힙한데 착하기까지?
핍박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은 멋진 사람.
시대의 어른이 세상을 떠났다.
남성의 눈에서 여성의 눈으로 다시 본 세계
역사는 파괴와 새로운 창조가 아니라 연속적인 발전 과정이다. 치욕스런 일제 조선의 역사도 엄연한 한국인의 역사다. 김윤식은 '전천후 세대' 비평가다. 1936년생인 그는 자신 세대의 포로가 아니다. "나 자신의 세대 의식은 없다" 스스로 고백하듯이 특정세대이기를 거부하고 객관적 투명성을 미덕으로 삼은 '구경꾼' 내지는 '방관자'의 특권을 극대로 행사한다.
필자는 뉴라이트 운동의 대부 안병직 교수의 제자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서울대 경제학부 이영훈 교수와는 안병직 교수 아래에서 동문수학했다. 2005년경부터 시작된 이영훈 교수의 역사 교과서 비판은 지금 청와대가 밀어붙이고 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진원(震源)이다. 근원을 파헤치지 않으면 잘못을 바로잡기 힘들다는 마음에서 스승과 선배를 정면 비판하는 부담을 감수하고자 한다.
10월 초 창비 부설 세교연구소 임원급의 문학비평가와 며칠 여행을 같이 하게 됐던 한 친구의 말에 따르면, 당시 창비 핵심으로부터 그 비평가에게 창비와 백낙청을 옹호하라는 '오더'가 수차례 떨어졌다고 한다. 놀랄 일 아닌가? 아마도 그에게만 그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창비의 창비스러움은 처음엔 백낙청 개인의 권위주의적 성격 때문에 불거졌지만, 이젠 그 개인을 넘어 창비라는 조직이나 진영의 신뢰와 관계된 문제가 되었다. 작가는 사과하고 뒤로 물러났는데, 정작 창비는 사과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조직을 지키라는 지침을 보냄으로써 소위 공부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조직원으로 여기고 있음이 드러났다.
역사를 단절과 새로운 창조가 아닌 연속적인 발전 과정으로 파악하는 법학의 기본방법론을 저는 선생님의 저술에서 확인했습니다. 시대와 시대, 세대와 세대 간의 분절현상이 과도한 우리의 문화적 풍토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를테면 일제 말기 지식청년들의 고뇌가 소재인 '학병세대'의 문학은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오래토록 우리 문학사에 커다란 공백으로 남아있었지 모릅니다. 또한 당신이 익숙한 세대의 작품에 경도되지 아니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후세 작가들의 작품을 한결 같은 애정과 엄정한 눈으로 읽어내시는 열정에 실로 경탄을 금치 못할 뿐입니다.